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년 2월 7일 ~ 1937년 5월 28일)
안녕하세요! 차달여입니다. 오늘은 차달여가 굉장히 좋아하는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하고 자랐으며 유대계 의사였습니다. 아들러는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나 유복한 집안이었습니다. 아들러는 서구에서는 프로이트와 융과 더불어 심리학의 3대 거장이라고 불리우나 한국에서는 최근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들러는 어린시절 구루병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병약했으며 폐렴, 후두경련 등을 앓았다고 합니다. 아들러는 어린 남동생의 죽음을 보면서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아들러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또다른 이유는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변화시켜 인류에 도움이 되고자 의사를 지망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 또한 의사였지만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다르게 연구가 아닌 진료를 위해 의학을 선택했고 처음에는 내과 의사로 개업했습니다.그는 1888년 빈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전공했지만 철학과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프로이트가 자신이 운영하던 '빈 정신분석협회'에 아들러를 초빙한 이후 협회에서 프로이트와 함께 핵심 멤버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학설 범성욕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프로이트와 대립이 생기며 1911년 '빈 정신분석협회'를 탈퇴했습니다. 이후 아들러는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는 개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심리학개론을 창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아들러 심리학"이라고 칭합니다. 아들러가 어릴때부터 병약한데다 어린 남동생 죽음 이후 2남이었던 아들러는 형과 사이가 나빴던 데에서 '열등감'을 특히 주목한게 생각하게 된 게 아닌가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오늘날의 의미로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이 아들러입니다.
아들러는 빈 대학교를 졸업한 후 2년만에 러시아의 혁명가인 트로츠키의 친구인 러시아 여성 '라이사(Raissa Epstein)'와 결혼합니다. 아내와 사회주의 공부 모임에서 만났을 정도로 아들러는 사회주의자였고 이것이 돈과 명성보다는 인류에 이바지하고 싶어한 의사가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들러는 내과의사로 활동했을 시기 가난한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고 환자앞에서 거만한 의사가 아닌 친절과 상냥함을 갖추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러는 의사였지만 전문용어를 삼가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이야기하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아들러의 인성과 삶의 지향점이 돋보는 부분입니다. 또한 아들러는 평생 부자와 귀족보다 보통 시민들과 대화하며 어울리며 진료를 끝낸 밤에는 카페에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토론을 즐겼다고 합니다. 아들러는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 이에 관해 "나의 심리학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아테네 거리에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던 소크라테스와 닮아보입니다.
아들러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아들러는 군의관으로 44세라는 적지않은 나이로 참전했습니다. 전쟁의 처참한 모습을 경험한 아들러는 타인을 적으로 대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도와주어야 하는 상대로 여기는 '공동체 감각'이라는 사상에 도달했습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이 이후 황폐해진 빈에서 아이들의 비행과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자 자신의 신념으로 빈 시와 협력하여 아동상담소를 설립했습니다.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러는 당초 정치 개혁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하였지만, 정치의 한계를 실감하고 정치가 아니라 '육아'와 '교육'으로 개인, 더 나아가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설립한 아동상담소는 아이와 부모를 치료하는 장소였고 교사, 카운슬러, 의사 등 전문 종사자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아들러는 육아와 교육이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이때부터 "카운슬링"이라는 분야를 공개적인 영역으로 이끌어낸 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나치즘(Nazism, 1933년~1945년)이 대두되면서 아들러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활동을 옮겼습니다. 1934년 미국으로 이주한 아들러는 새로운 곳에서 열정적으로 개인심리학의 실제와 이론에 대해 강연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로부터 몇년동안 강의와 책을 출판하며 큰 호평을 얻던 아들러는 1937년 5월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심근경색으로 급사했습니다. 그의 나이 67세였습니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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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발발하며 수많은 아들러파 학자들이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들러 심리학이 아우슈비츠에서 한번 맥이 끊어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아들러의 제자인 드라이커스(Rudolf Dreikurs)가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다시 보급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아들러의 사상은 한 세기를 앞서나갔다고 할 정도로 현재에 아주 알맞는 심리학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아들러의 견해가 한국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아주 많은 사랑을 받은걸 보니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가져할 자세와 대처방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알프레트 아들러의 생애와 개인심리학의 탄생과정을 설명드렸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아들러의 심리학(개인심리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이상 차달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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